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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오일샌드 열풍

글 : 로버트 쿤직 사진 : 피터 에식

한때 채산성이 맞지 않고 환경에 치명적이라는 이유로 지지부진했던 캐나다 앨버타 주의 오일샌드 개발이 이제 수천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1963년 어느 날, 7살 소년 짐 바우처는 캐나다 앨버타 주 북부 포트매케이 인디언보호구역에서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애서배스카 강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덫을 놓고 있었다. 그곳은 구릉진 늪지대로, 군데군데 호수가 흩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작은 강들이 흐르고 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난쟁이 나무들로 뒤덮여 있는 그곳은 캐나다 전체 면적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북극침엽수림대의 일부다. 1963년만 해도 이곳 숲은 대부분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포트매케이로 가는 자갈길이 나기 전이라 그곳에 가려면 배를 타거나 겨울엔 개썰매를 타야 했다. 치페위안 인디언 부족과 크리 인디언 부족은 이곳에서 거의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았다. 바우처는 치페위안족이었다. 이들 인디언 부족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말코손바닥사슴과 아메리카들소를 사냥하고 애서배스카  강에서 월아이 물고기와 송어를 잡았다. 숲에서는 크랜베리와 블루베리를 따 먹었다. 또 돈벌이를 위해 덫을 놓아 비버와 밍크를 잡기도 했다. 포트매케이는 과거에 소규모 모피 교역지였다. 가스, 전기, 전화, 수도 같은 것들은 1970~1980년대에야 들어왔다.

 

바우처가 기억하기로는 1963년 그날 할아버지와 함께 덫을 놓던 밀드레드 호 근처 길목에서부터 이곳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조들은 수천 년 전부터 대대로 이 길목을 따라 덫을 쳐왔어요.” 지난 여름 어느 날 포트매케이에 있는 널찍하고 세련된 사무실에 앉아서 그가 말했다. 사무실 한구석엔 골프 퍼터가 있었고 부드러운 모차르트 선율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숲을 개간하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대대적으로 말입니다. 사전 통보도 없었어요. 1970년대에 사람들이 들이닥치더니 할아버지의 오두막을 철거했어요. 아무런 사전 통보나 협의도 없었어요.” 그는 그때 처음으로 지난 몇 년 사이 앨버타 주 북동부의 이 지역을 완전히 변모시킨 오일샌드(油砂) 산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금 바우처는 그 오일샌드 개발에 완전히 파묻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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