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오브스쿠라
글 : 톰 오닐 사진 : 아벨라르도 모렐
사진작가 아벨라르도 모렐은 카메라오브스쿠라의 원리를 이용해 암실의 벽을 황홀한 풍경으로 가득 채웠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어두운 방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자 방 안에 생소하고도 멋진 영상이 나타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BC 4세기에 이런 현상을 글로 남긴 바 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빛의 투영 과정을 밑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시간을 빨리 감기해 1988년 미국 보스턴의 어느 예술 디자인대학교의 강의실로 가 보자. 사진학 개론을 가르치는 쿠바 출신의 아벨라르도 모렐은 이 해묵은 현상을 재현해보고 싶었다. 화창한 어느 날, 그는 강의실 창문을 검은색 비닐로 덮어 그곳을 동굴처럼 깜깜하게 만들고는 비닐에 동전만 한 구멍을 하나 냈다.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지켜보라고 했다. 그 순간 강의실 뒷벽에 마치 영화 화면처럼 영상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강의실 바깥의 헌팅턴 가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량의 어렴풋한 모습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모든 것이 뒤집혀 있는 영상이 학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력의 법칙에 대혼란이라도 생긴 것처럼 하늘은 마룻바닥 쪽으로, 땅은 천장을 향해 있었다.
모렐은 강의실을 카메라오브스쿠라로 변모시켰던 것이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오브스쿠라는 최초의 촬상 장치(撮像裝置)이자 현대 사진기의 전신이 되는 기기다.
카메라오브스쿠라는 인간의 눈과 마찬가지로 작은 입구를 통해 사물의 상을 거꾸로 받아들인다. 외부의 빛은 구멍을 통해 비스듬한 각도로 들어오기 때문에 나무의 경우처럼 물체의 꼭대기부터 빛을 받아들이면 위에서 아래로 투영되고 꽃의 경우처럼 낮은 곳에서 빛을 받아들이면 아래에서 위로 투영된다. 이렇게 들어온 빛들이 어두운 공간 안에서 교차하면서 뒤집힌 상을 만들어낸다. 마치 기적 같지만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다. 눈이 받아들인 뒤집힌 상은 뇌가 알아서 자동으로 바로 잡아주고 일반 카메라의 경우에는 거울이 상을 뒤집어 바로 잡아준다.
휴대용 카메라오브스쿠라는 17세기에 처음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종이상자로 암실을 만들고 구멍에 렌즈를 끼웠다. 1800년대 초에 발명가들은 투영된 상을 포착해 보존하기 위해 화학 약품으로 처리된 종이나 금속판을 카메라오브스쿠라의 뒷면에 끼워 넣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사진 기술이 탄생했다.
사진학과 교수인 모렐은 그날 강의실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영리하고 최신 기술에 정통한 학생들이 벽에 생긴 상을 보고 완전히 압도되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이 현상이 지닌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첫 번째 계획은 수업의 보조 자료로 쓰기 위해 카메라오브스쿠라의 투영 과정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91년도 작품인 ‘전구’(위)다. 모렐은 평범한 가정용품들을 사용해 핀홀 카메라가 상을 바꿔놓는 과정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