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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구다

글 : 데이비드 콰멘 사진 : 윌리엄 앨버트 앨러드

미국 몬태나 주 북부 하이라인의 자영농지 정착민들은 혹독하고 고립된 환경에서도 삶을 일궜다. 끈끈하게 뭉친 후손들 역시 조상들만큼이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성실하게 농업과 목축업을 일군 미국 몬태나 주 북부의 역사는 거짓말에 가까운 오해에서 시작됐다. 모든 식구를 먹여살릴 만큼 넉넉한 토지를 무상으로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토지는 완전히 공짜도 아니었고 결코 넉넉하지도 않았다.


1862년에 미 의회에서 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이 오해는 국가 차원의 약속으로 성문화됐다. 개인이 선택한 부지에 집을 지어 작물을 심고 5년간 거주하면 약 65ha의 토지에 대한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토지 소유권이 주어졌다. 이 법은 연방 공유지 중 주인이 없는 모든 땅에 적용됐고, 이중 상당 부분이 우리가 현재 몬태나 주라고 부르는 지역을 포함한 미시시피 강 서부 지역에 속했다. 몬태나 주 북부 지역의 3분의 1은 캐나다 국경에서 아래로 약 160km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로키 산맥 초입까지 이어지는 약 1050만ha에 이르는 지역으로, 대부분 키 작은 풀과 산쑥으로 뒤덮인 반건조 평원들이었다. 백인 정착민들이 그 땅을 점유해 원주민들이 더 이상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바람이었다. 그레이트노던 철도회사의 설립자인 제임스 J. 힐은 그 땅을 철도 이용객들이 점유해 자신의 곳간차가 이들이 필요로 하는 농기구, 마구, 가정용품, 곡물 씨앗 따위와 농작물을 실어 나르기를 바랐다. 이러한 바람들에 부응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이주해왔다. 그들은 인적 없이 길게 이어진 평원에 희망을 걸고 자신들의 노고와 젊음을 바쳤다. 사람들은 이를 ‘홈스테딩(자영농지 경작하기)’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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