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Kids 매거진

온두라스

글 : 내셔널지오그래픽 편집국 사진 : 다닐로 몬지엘로 외

개요
공식 명칭: 온두라스 공화국
정부 형태: 대통령제
수도: 테구시갈파
인구: 1066만 명(2024년 기준)
공용어: 스페인어
통화: 렘피라
면적: 11만 2492㎢(한반도의 약 2분의 1)
주요 하천: 파투카강, 울루아강
주요 산지: 화산 고원, 중앙아메리카 코르디예라
 
지리
온두라스는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광활한 해안선이 카리브해에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짧은 해안선이 태평양에 접해 있습니다. 해안 주변에는 여러 섬이 있습니다. 온두라스는 니카라과에 이어 중앙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온두라스는 크게 중앙 고원, 태평양 연안 저지대, 카리브해 연안 저지대의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온두라스에는 높이 2849m에 이르는 봉우리를 비롯해 산이 많지만, 중앙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활화산이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로아탄섬은 온두라스 북부 해안에 있는 섬으로 산호초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 사진: STELLAR150, DREAMSTIME
사람과 문화
온두라스 인구의 다수는 고원 지대에 거주하며 로마 가톨릭교를 신봉합니다. 가족 관계는 온두라스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온두라스인 다수는 빈곤에 시달리지만, 최근 교육 환경이 개선되어 문해율은 90%가 넘습니다.
 
인기 있는 음식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카사바(타피오카), 해산물, 고추를 재료로 사용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옥수수, 콩, 쌀 등의 주식에 의존하며 육류는 거의 먹지 못합니다.
 
축구는 온두라스에서 매우 인기가 많은 스포츠입니다. 국가대표팀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응원하는 지역 축구팀이 곳곳에 있습니다. 축구는 남성에게 인기가 많지만, 농구, 배구, 춤은 여성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서양권의 영화와 음악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오락거리입니다.

 
로아탄섬의 음악가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음악과 춤은 많은 온두라스인이 즐기는 오락거리입니다. | 사진: 다닐로 몬지엘로, DREAMSTIME
자연
온두라스의 식생은 기후와 고도에 따라 변하며, 맹그로브, 상록수, 스페인삼나무, 참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분포합니다.
 
온두라스에는 나비, 딱정벌레, 거미 등 다양한 색을 지닌 곤충이 많습니다. 뱀과 악어를 비롯한 파충류는 열대 우림에 주로 서식합니다. 몸집이 큰 동물로는 사슴, 오셀롯, 퓨마가 서식합니다. 해안 지역에서는 새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온두라스에는 토착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과 보호구역이 여러 곳 있습니다.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 있는 산미겔 대성당 | 사진: 레셰크 브로나, DREAMSTIME
정부와 경제
온두라스 국민은 대통령을 4년 단임제로 선출합니다. 대통령은 18명의 주지사를 임명해 지방 행정을 운영합니다. 주는 더 작은 지방 행정 구역으로 나뉘며, 각 구역의 주민은 선거로 시장을 선출합니다.
 
농업은 온두라스 국민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전체 노동 인구의 약 3분의 1이 농업에 종사합니다. 커피와 바나나는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입니다.

 
건강한 산호초에 둘러싸여 있는 로아탄섬에는 상어를 비롯한 많은 해양생물이 서식합니다. | 사진: HOTSHOTSWORLDWIDE, DREAMSTIME
역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6세기에 온두라스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온두라스에는 마야족을 비롯해 여러 원주민 집단이 살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의 도착 이후 온두라스는 스페인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1821년, 온두라스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 잠시 멕시코의 일부가 되었다가 새롭게 형성된 중앙아메리카 연방에 가입했습니다. 1838년 온두라스는 연방에서 탈퇴해 독립 국가가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의 기업들이 온두라스 북부에 진출해 거대한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두라스에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자 미국 정부는 자국의 바나나 산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등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이어갔습니다.
 
1969년, 군사 정권의 통치를 받던 온두라스는 이웃 나라 엘살바도르와 이민 정책 및 국경 문제로 갈등이 격화되어 나흘 동안 막대한 피해를 남긴, 이른바 ‘축구 전쟁’을 벌였습니다. 온두라스에서는 1982년 군사 정권이 무너지고 민정이 회복되었습니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간의 국경 문제는 1992년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로 마침내 해결되었습니다.
 
1998년 허리케인 ‘미치’로 온두라스에서는 5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정치적 불안정은 끈질지게 이어져 2009년에도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온두라스의 한 거리에서 노인이 짐을 실은 노새들 곁에서 쉬고 있습니다. | 사진: 윌리엄 리먼, DREAMSTIME
 
 

사진 속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