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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의 은

글 : 줄리언 생크턴 삽화 : 아리아 사파르자데간

2000년 전에 로마의 군대가 머나먼 곳으로 은을 찾아 나섰다. 한 비전문 고고학자의 집요한 노력 덕에 우리는 그들이 제국의 운명을 바꿨을지도 모르는 보물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알게 됐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그 일화는 무심히 읽고 넘기기가 쉽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쓴 <연대기>에는 다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한 단락에 걸쳐 등장한다. 바로 군단병들을 로마 제국 변경의 위험천만한 광산에 억지로 들여보낸 평판 나쁜 사령관에 관한 이야기다. 이 사건은 로마 제국이 국경 밖의 땅과 자원을 집어삼키며 맹렬하게 영토를 확장하던 클라우디우스 황제 재위기(AD 41-54년)에 일어났다. 로마가 점령한 상 게르마니아 외곽의 ‘마티움 지역’으로 기술된 이곳이 어디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임무는 분명했다. 바로 제국의 경제 동력인 특정 금속을 더 찾아내는 것이었다.
 
AD 1세기에 만들어진 ‘미네르바 사발’은 1868년에 독일 니더작센주에서 발견됐다. INGRID GESKE-HEIDEN, BPK, ANTIKENSAMMLUNG, STAATLICHE MUSEEN ZU BERLIN
은은 귀족과 로마군 장교, 병사들에게서 나와 은화, 은괴, 장신구의 형태로 경제 전반에 흘러 들어갔다. 은화는 단순히 화폐에 그치지 않았다. 황제의 옆모습이 새겨진 은화는 로마 영토 전역에 유통되면서 그 하나하나가 황권을 상징하게 됐다. 그전까지 로마가 채굴한 은의 대부분은 이스파니아(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나왔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탐광자들은 제국 전역에서 다른 광맥들을 물색해왔다.

타키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군단병들은 고되고 지저분하며 위험한 채굴 작업으로 “녹초”가 됐다. 그들은 “물길을 파고 지하 채굴장을 조성하는 등 개활지에서도 쉽지 않았을 일들을 했다.” 그것도 석유 램프를 켜서 간신히 앞을 볼 수 있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말이다. 군단병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알리기 위해 인기 없는 사령관인 쿠르티우스 루푸스의 노고를 개선장군의 영예로 표창해달라고 주청하는 편지를 황제에게 보냈다. 이를 통해 루푸스의 헛된 노력이 멈추기를 기대한 것이다. 결국 은 탐광 작업은 중단됐고 그들의 진지는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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