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니마 린지 셰르파는 18살의 나이로 세계 최고봉 14좌를 등정한 최연소 등반가가 됐다. 그러나 니마에게는 더 까다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등반 업계에서 셰르파가 맡은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과 전문 등반가로 인정받기 힘든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지난해 10월, 마른 체격의 18살 셰르파 등반가가 티베트의 눈 덮인 봉우리에 선 채 어스름 속에서 셀카 영상을 찍었다.
오전 6시 5분, 니마 린지 셰르파는 시샤팡마산 정상에 오르며 세계 8000m급 고봉 14좌를 모두 정복한 최연소 등반가가 됐다. 이날 아침 정상에 오른 해외 각국의 등반가들처럼 니마 역시 셰르파 안내인의 지원을 받았다. 두툼한 다운 수트를 입은 채 희박한 공기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던 니마는 기도해준 어머니와 원정 비용을 대준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했다. 니마는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의 분쟁을 넌지시 언급하며 전쟁과 증오, 인종 차별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것이 10대인 내가 여러분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니마는 숨을 헐떡이며 말한 후 “야호”라고 외쳤다. 대부분의 셰르파 등반가는 짐을 나르거나 로프를 설치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세계적인 슈퍼스타를 꿈꾸는 니마 린지 셰르파는 특별한 기회를 누리고 있다. 미국 뉴욕주에 방문해 출판 계약을 논의하고 타임스퀘어를 둘러보는 일정도 그런 기회에 해당한다. DINA LITOVSKY
하산하자마자 니마는 인도 뭄바이에 있는 매니저에게 그 영상을 보냈다. 매니저는 감동적인 음악을 깔고 인스타그램 릴스로 편집해 당시 니마의 팔로워 2만 명에게 공유했다. 기자들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한편 ‘셰르파파워’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이 10대 등반가의 훈훈한 사연을 나눴다. 셰르파는 약 120년 동안 세계 최고봉에 올라 명성을 얻으려는 외국인 등반가들의 짐꾼과 안내인 역할을 해왔다. 이 일과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다 보니 많은 서양인들은 ‘셰르파’가 직업명이 아니라 민족명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하지만 셰르파는 지난 15년 동안 업계를 선도하는 등반 안내 회사도 설립하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세계 기록도 세웠으며 최초 등반도 이뤄냈다. 니마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전환점에 서 있다. 셰르파 니마는 이제 안내인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전문 등반 스타로 거듭나려 한다.
니마는 기록을 세운 지 두 달 만에 벌써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등반가 시모네 모로(57)와 함께 해발 8163m의 마나슬루 겨울 등정을 기획하고 있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두 사람은 순수 알파인식으로 8000m급 고봉을 겨울에 오르는 최초의 인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순수 알파인식 등반이란 니마가 14좌 등반 당시 이용했던 설치된 캠프나 고정 로프, 산소통, 셰르파의 지원 없이 단숨에 정상에 오르는 방식을 의미한다. 니마의 아버지 타시 락파 셰르파(오른쪽)는 네팔 최대 규모의 등반 안내 회사에 속하는 ‘세븐 서밋 트렉스’를 공동 설립했다. 타시는 에베레스트산을 아홉 번 오른 경험이 있어 등반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들 니마가 “셰르파 공동체에 전혀 다른 기회를 가져다줄 녀석”이라고 말한다. KRYSTLE WRIGHT
남아시아 최빈국에 속하는 네팔 출신의 등반가 대다수는 이런 원정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니마에게는 특별히 여건이 갖춰져 있다. 아버지 타시 락파(39) 셰르파와 삼촌들은 네팔 최대 규모의 등반 안내 회사인 ‘세븐 서밋 트렉스’를 창립했다. 형제들은 타시가 운영하는 등반 장비 업체 ‘14 픽스 익스페디션스’와 헬기 회사 ‘헬리 에베레스트’뿐만 아 니라 여러 사업체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재력 있는 아버지 덕분에 니마는 다른 셰르파처럼 산에서 고생하며 안내 일을 하거나 서양인 등반가의 장비를 나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니마가 모로를 스승으로 둘 수 있었던 것도 가족 인맥 덕분이었다. 이 등반가 모로가 형제들의 헬기 회사에서 조종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마(오른쪽)는 아버지의 인맥 덕분에 고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에서 장비와 보급품을 운반하며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KRYSTLE WRIGHT
니마가 떠나기 며칠 전, 우리는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알로프트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이 호텔은 세븐 서밋 트렉스의 본사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거뭇거뭇한 콧수염과 깔끔한 에어 조던 운동화, 진지한 열정 등 10대다운 모습의 니마는 카푸치노를 홀짝이며 언론이 좋아할 만한 발언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말재주가 좋고 사립학교를 나온 니마는 마치 대사를 외우듯 막힘없이 말했다. “의미 있는 프로젝트만 하고 싶어요. 우리는 언젠가 죽을 테고 시간은 정말로 한정돼 있잖아요.” 그는 말했다. 겨울 원정은 니마가 지금껏 해온 등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전이 될 터였다. 살을 에는 강추위와 허리케인급 강풍 때문에 등반가들이 며칠씩 텐트에 갇힐 수도 있다. 하지만 니마는 개의치 않았다. 니마는 자신을 등반가라기보다는 탐험가라고 여겼고 겨울 등반은 해본 적도 없으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겨울 등반은 탐험에 가까워요. 나한테 더 어울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