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팔가르 해전
200년 전 10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 함대를 이끌었던 넬슨 제독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전략을 세워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무찔렀으나 불행히도 전사하고 말았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74문 전열함 벨라일 호의 선미루 갑판 앞쪽에 서 있던 폴 니콜라스 대위는 엎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겨우 16세였고 이번이 첫 승선이었다. 이제 그는 난생 처음으로 전투라는 것을 맛보게 될 것이다. 때는 1805년 10월 21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장소는 스페인 남부의 카디스 부근이었다. 벨라일 호가 물결을 가르며 적을 향해 서서히 진격할 때 니콜라스는 프랑스와 스페인 함선 33척이 북쪽의 로슈 곶에서 남쪽의 트라팔가르 곶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수 킬로미터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벨라일 호 승조원들의 사기는 높았다. 그들은 '조니 크라포드(프랑스인을 뜻함)'를 공격하기 위해 두 달 넘게 기다려 왔다. 대포에는 포병들이 쓴 '승리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날 아침 함대의 악대는 '떡갈나무의 심장'이나 '영국인이여, 표적을 맞춰라'와 같은 애국적인 음악을 연주했다. 전선에서 벨라일 호를 향해 첫 포격을 가해 오자 함장 윌리엄 하굿은 승조원들에게 엎드리라고 명령했다. 니콜라스 가까이에 있던 한 신병은 포탄에 맞아 목이 날아갔고, 피와 신체 부위들이 갑판 여기저기로 튀었다. 니콜라스는 어딘가 다쳐서라도 엎드리고 싶었으나 해군 분견대 부사령관이자 장교였던 그는 꼿꼿이 서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존 오웬 중위 옆으로 갔다. 몇 년 후 니콜라스는 오웬의 기상이, "나를 격려해 맡은 바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기록했다. 영국왕실해군(H.M.S.)의 기함 빅토리 호가 바다 저편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 역시 그의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100문의 빅토리 호는 넬슨 제독이 지휘하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그를 만나 본 적은 없었지만, 다른 영국 해군들처럼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넬슨이 스페인 선박을 나포한 후 그것을 이용해 두 번째 선박에 올라 나포했던 이야기, 테네리페에서 야간공격을 이끌다 한쪽 팔을 잃은 이야기, 7년 전 아부키르 만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한 이야기들 말이다. 넬슨이 지휘하면 결과는 틀림없었다. 그 날 아침 넬슨은 돛대 위에 "영국은 모든 대원들이 각자의 임무를 완수하리라 기대한다"는 신호기를 게양하게 했다. 전 함대는 이에 환호했다. 그러나 곧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양군의 함대들이 나란히 정렬해 일제히 발포하는 교과서식 전투와 달리, 넬슨은 '난장판 전투'를 원했다. 그는 27척으로 편성된 영국 함대를 두 열로 나눈 뒤 적의 전투선을 두 갈래로 가르며 돌진할 것을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