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캐니언
붉게 타오르는 서부 대협곡 글렌캐니언의 웅장한 자태가 드러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1년 전 파월 호의 수위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디딘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위였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호수의 3분의 2가 말라 버려 물 속에 잠겨 있던 암벽이 40m나 드러났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자 거대한 저수지는 붉은 바위가 미로처럼 얽힌 협곡으로 잠시 돌아왔다. 바로 글렌캐니언이었다. 글렌캐니언이 위용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웅장함이 뒤지지 않는 이 협곡이 언젠가 영원히 그 모습을 뽐내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 사건은 톰 맥코트 옹의 어린 시절도 부활시켰다. 맥코트는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바위에 기대어 40년 전 기억을 더듬는다. 황토 빛 콜로라도 강물이 가로지르고 요새처럼 솟아오른 암벽이 병풍처럼 드리운 광대한 범람원에는 작은 마을 두 개가 있었다. 맥코트의 조부모는 화이트캐니언이라는 동쪽 마을에 살았다. 이 마을이 서서히 파월 호에 잠기기 전에 말이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 집에 자주 놀러 간 맥코트는 이곳이 지형은 험준하지만 비옥했다고 기억한다. "토양이 너무 비옥해 수박을 재배할 수가 없었죠. 넝쿨이 너무 빨리 자라 수박 열매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바람에 익기도 전에 상처투성이가 되었거든요." 이른 봄날 아침, 화이트캐니언에 살던 두 집안의 3대가 한자리에 모여 협곡이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을 지켜 본다. 아직 예전의 활주로나 맥코트 할아버지의 집터가 드러날 만큼 수위가 낮지는 않지만, 저마다 마음 속에 담고 있는 특별한 기억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눈 옛 추억들을 되살리기엔 충분하다. 맥코트의 사촌인 제니스 요크는 다섯 살 때까지 부모와 함께 이곳에 살았다. 제니스는 할아버지 집 뒤편의 언덕 위에 올라가 마치 여왕이라도 된 듯 으스대곤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신다. "유난히 반짝이는 바위들이 있었죠." 아마 사람들이 '바보들의 금'이라 부르는 황철광이었을 거라고 제니스는 말한다. "난 그것들을 내 어여쁜 보석들이라고 불렀어요." 제니스는 협곡 너머로 시선을 옮기며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기억을 더듬는다. "내 보석들에게 언젠가 꼭 돌아올 거라고 말했죠." 1963년 글렌캐니언 댐이 수문을 닫아 애리조나 주 페이지 인근의 콜로라도 강물을 막았다. 그 후 로키 산맥 서사면에서 흘러내린 눈 녹은 물과 봄비가 댐의 콘크리트 제방에 갇히며 수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채로웠던 글렌캐니언은 수면이 상승하면서 아래쪽부터 단조로운 청록색 저수지로 변했다. 콜로라도 강 하류에 있는 미드 호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가 탄생한 것이다. 파월 호의 풍부한 수자원 덕에 라스베이거스에 어린이 야구장이 잇달아 생겼고, 로스앤젤레스에는 주택 건설 붐이 일어났으며, 피닉스는 골프장으로 뒤덮였다. 호수 수위가 상승하면서 글렌캐니언은 조금씩 수면 아래로 잠기기 시작했다. 글렌캐니언이 물 속에 잠기자 사진작가 엘리엇 포터는 비가를 바치며 이곳을 '누구도 알지 못했던 곳'이라고 노래했다. 잊혀진 땅 대신 글렌캐니언 국립휴양지는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된 이곳의 특성을 이용하여 요트, 수상스키, 줄무늬농어 낚시의 중심지로 부상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초에 시작된 가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 5년간 서부 지역의 물 소비량은 계속 증가했지만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다. 7개 주의 젖줄인 콜로라도 강의 유량이 점점 줄어들었다. 콜로라도 강의 대형 저수지인 미드 호와 파월 호의 수량도 감소했다. 댐이나 수로 건설, 인공강우를 위한 구름 씨 뿌리기, 유량 조절 등 온갖 노력도 강수량 부족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한 서부의 저수지를 채울 길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파월 호의 수량 감소 덕에 글렌캐니언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 잠시나마 글렌캐니언을 보는 행운을 누렸던 사람들은 40여 년 만에 다시 그 모습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사진과 글로만 만날 수 있었던 글렌캐니언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