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그레이트플레인스가 변하고 있다
미국 중부 내륙의 곡창지대는 미국과 세계의 주요 식량 생산지다. 하지만 오랜 가뭄과 인구 감소로 농부들이 이곳을 떠나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아메리카들소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쿠바에 돌아올 때마다 나는 혹시 마을이 사라지지나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먼지 나는 캔자스 주의 평원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도로 폭은 좁아지고, 폐허가 된 마을과 농장들을 만난다. 나는 쿠바도 이렇게 대평원 농가 마을들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한때는 활기 넘치는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도, 사업도, 그리고 희망도 사라졌다. 작은 시골의 고향마을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여느 사람들처럼, 나 역시 소박한 추억이 깃들여 있는 시골 도시와 마을들이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장소가 있다. 내게는 내가 자라난 벨빌 근처의 농장에서 25km 떨어진 캔자스 주의 쿠바가 바로 그런 곳이다. 쿠바는 남북전쟁 후 서쪽으로 이주해 온 농부들이 1868년에 세운 마을로, 카리브 해의 섬나라인 쿠바를 방문하고 온 한 여행객이 이 지역을 다녀간 후에 쿠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스페인에 항거했던 쿠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을에 정착했던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음이 틀림없다. 특히 1870년대 보헤미아 지방에서 건너온 체크계 이민자들이 많았던 초기 정착민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당시 보헤미아 지역도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쿠바를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쯤이었다. 젊은 사진작가였던 나는 미국의 작은 마을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남기고 싶었고 쿠바는 이러한 내 계획에 아주 적합한 대상인 것 같았다. 주민이 300명도 채 안 되는 이 마을은 관개시설도 안 되어 있는 메마른 밀농장에 둘러싸여 있어 가뭄이나 경제위기를 한 번만 더 겪는다면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마을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시작하면서 어릴 적에 내가 다녔던 학교와 농장들이 사라지고, 마을들은 서서히 활기를 잃어 가거나 버려진 채 죽어 가는 것을 보아 왔다. 내가 쿠바에 돌아올 때마다 마을이 사라져 버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따라다녔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외곽에서 중심가로 들어서면 쿠바는 그곳에 건재해 있었다. 은색 급수탑, 널찍한 자갈길, 마을회관도 그대로 있었고, 그 모든 중심에는 웨스 클리머의 주유소가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요염한 포즈의 여자 모델 사진 아래서 농담과 객쩍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카드놀이를 하는 남자들이 가득한 이곳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쿠바는 내게 마을 공동체에 절대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진정 쿠바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은 마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죽고, 태어나고, 떠나고, 도착하는 모든 것이 중요한 행사이다. 며칠 전 밤에 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온 커티스 트리체크를 보았다. 커티스는 내가 처음 쿠바를 방문했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었는데 지금은 곧 이라크에 파병될 군인이 되어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의 사진을 찍어 왔다. 지난 30년 동안 이런 식으로 계속 사진을 찍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