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초기의 왕릉
과테말라의 타칼리크 아바흐에는 마야문명과 그 이전 올멕문명이 세워 놓은 석상들이 있다. 이곳에서 마야 초기의 왕릉이 발굴되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오랜 세월 과테말라 남서부 지역을 뒤덮은 커피나무숲 아래에 감추어져 있다가, 무성한 수풀을 거두어 내자 모습을 드러낸 의식용 광장이 근처에 더 많은 유물들이 숨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케 해줄 뿐이다. 6.5㎢ 면적 내에서 12곳이 넘는 이와 비슷한 광장들과 80여 개의 건축물들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한 건축물에는 마야 초기에 통치했던 한 왕의 장신구들이 들어 있었다. 지금은 타칼리크 아바흐로 알려져 있지만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이 도시를 지배했던 왕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그러나 과테말라 문화체육부 소속 고고학자인 크리스타 샤이버 데 라바레다는 이 왕은 아마도 자신의 영토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도시의 전성기였던 BC 8세기에서 AD 2세기까지 사용했던 무역로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자갈길이 과거 이 도시가 융성했던 한 가지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상인들은 당시 금쪽같이 여겼던 카카오와 소금을, 이 길을 통해서 멀리 떨어진 오늘날의 엘살바도르와 멕시코에 있는 도시들로 운반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각종 공구와 장식품, 그리고 예술작품의 재료로 쓰였던 비단날개새의 깃털, 황철석, 흑요석 및 비취 등을 가지고 왔다. "타칼리크 아바흐는 인디오 문명 초기에 매우 중요한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고 샤이버는 말한다. 이 지역의 발굴은 19세기 말 한 식물학자가 조각된 돌 유적들 중 일부가 땅 위로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대부분 올멕과 마야문명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277개의 유적들이 타칼리크 아바흐에서 발견되었는데, 타칼리크 아바흐란 마야어로 "서 있는 돌(입석)"을 의미한다.(이 이름은 과거에는 스페인어 어법대로 아바흐 타칼리크로 쓰이다가 최근에 정정되었다.) 마야 유적들 중에는 가장 오래된 마야문자의 일부로 판명된 난해한 상형문자가 새겨진 비석들도 몇 점 있다. 이곳은 현재 국립고고학공원으로 지정돼 보호 받고 있다. 입석들이 서 있는 위치는 그 위에 새겨진 글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넓고 평평한 토대 위에 유적들이 용의주도하게 배열되어 있는 '7번 구조물'은 형태로 보아 과거에 천체관측소로 사용된 듯하다. 샤이버와 동료 학자들은 이 유적들의 배열을 따라가 보았다. 그 결과 제일 먼저 장식된 돌기둥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주위에는 660개의 제기들이 놓여 있었다. 샤이버는 당시를 회상한다. "조금 더 깊이 파 내려가자 의식을 행할 때 사용했던 향의 탄소 침전물 냄새가 나서 우리는 흥분했죠." 그녀의 조사팀은 그 돌기둥 뒤편에 있는 작은 건물 안쪽 깊숙한 곳에서 도굴되지 않고 무사히 보존되어 있는 왕릉을 발견했다. 여러 가지 화려한 부장품과 함께 묻혀 있는 이 왕은 아마도 타칼리크 아바흐의 마야 통치자 중 마지막 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