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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베트남전쟁 당시 종군기자였던 필자가 시인의 도시, 하노이를 다시 찾았다. 그의 눈에 비친 하노이는 역사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활력이 넘치는 기회의 땅이었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너그러이 포용하는 매력이 넘치는 도시 하노이와 하노이 사람들을 소개한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나는 결코 베트남에 되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하노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종군기자로 일하면서 두 번에 걸쳐 베트남을 벗어난 적이 있었다. 베트남에 처음 들어온 지 2년 뒤인 1970년과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의 일이었다. 그 당시 친구들은 말했다. "베트남은 정말 아름다워. 평화로워지면 다시 오고 싶은 나라야." 하지만 나는 달랐다. 전혀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베트남의 추억,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은 돌이키고 싶지 않은 빛바랜 기억이 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고 하노이는 겨울이었다. 나는 이미 여러 해 이 도시를 고향으로 삼고 있었다. 쭉 바익 호수(하얀 비단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9층 발코니 너머로는 여러모로 나를 놀라게 했던 아름다운 이 수도가 안개와 한기에 뒤덮여 있었다. 발코니 아래 거리에서는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큰 소리로 호객하는 빵장수, 자전거에 단 확성기로 그날의 기사 제목을 외치고 다니는 신문팔이, 착암기 소음, 망치로 새 청동 불상을 다듬는 장인. 잡다한 소리였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거대한 변화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를 휩쓸고 있었지만, 거리의 소음은 전쟁의 고통이나 얻기 힘든 평화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남아 있는 하노이의 친근함과 영구함을 떠올리게 했다. 1997년 인도차이나에 처음으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평시 지국을 세우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 전설적인 도시는 처음 보는 곳이었다. 베트남인의 가슴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상처는 제외하고 예상과는 달리 전쟁의 상흔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눈에 띈 것은 활기차고 낙천적인 도시였다. 하노이는 민족적 자긍심과 함께 많은 호수, 가로수가 늘어선 대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유산인 황갈색 저택 등 아름다운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인인 나에게 적대감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 마음 속으로 준비를 했지만,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환하게 웃음 짓는 관대함과 따뜻한 환대가 가는 곳마다 나를 맞이했다. 내가 본 하노이는 되살아난 도시였다. 1000년 넘게 전쟁과 가난, 외세의 지배에 짓눌린 하노이는 외국의 투자가와 관광객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기업의 사유화를 인정한 공산정부의 결정으로 젊음과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다른 동남아시아 도시는 개발 과정의 희생물로 전락해 고유한 특성이 파괴되었지만, 독특한 원칙을 고수한 하노이는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하며 전통과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이 도시는 가까이 다가오면서도 거리를 둔다. 화창한 날이면 즐거움이 넘친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애수에 젖는다. 사라진 인도차이나의 영혼이 산들바람 속에 떠도는 곳이 하노이다. 10년 세월, 시간은 질긴 실로 변했고 만발한 꽃은 보랏빛으로 빛나고, 담장에는 곰팡이와 이끼가 가득하다. 하노이에서 10년을 보내면서 나는 나만의 기쁨과 슬픔을 찾았다. 이 시를 지은 응우옌 득 머우는 베트남의 유명한 시인 가운데 한 명이다. 북베트남 병사였던 그는 전쟁 당시 라오스의 동굴과 호치민 루트의 지하 은신처에서 촛불을 밝히고 시를 썼다. 머우를 만나기 위해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테이블 위에는 녹차잔과 번역 시집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머우는 몇 년 전 미국에서 그 시집에 실린 작품을 낭독한 적이 있었다. 미국과 베트남의 참전용사가 모인 자리에서였다. 종군기자였던 나는 베트남 문화와 역사를 거의 몰랐다. 그 유구하고 풍부한 시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머우에게 베트남 시인은 모두 하노이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곳은 시인의 영혼을 키우는 도시입니다." 그는 말했다. "설명이 쉽지는 않은데요, 일종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안개의 손길. 홍 강의 풍경. 전통과 투쟁의 삶.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이 하노이를 감돌고 있지요. 당신이 걷고 있는 거리는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인의 도시요? 맞아요, 흔히들 그렇게 부르죠. 하노이는 항상 예술가와 지식인의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적 이유도 있습니다. 이곳은 베트남 왕조들의 중심지였어요. 왕조들은 북부에 지적 기반을 마련했죠. 황제들은 학자와 시인을 가까이에 두었고, 일찍이 11세기 리 왕조부터 시는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였습니다. 남부에는 이런 역사와 전통이 없어요. 사이공만 해도 18세기 이후에야 도시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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