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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이벤 호

1945년 독일의 여객선 슈토이벤 호가 소련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선체가 쪼개져 4500명의 피난민과 부상병과 함께 침몰하기까지는 20분이 소요됐다. 하지만 발트 해에서 이 배의 잔해를 찾는 데는 6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배가 침몰한 1945년 당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우리 네 명이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발트 해는 먹구름처럼 잔뜩 흐린 잿빛이었다. 우리는 일반 스쿠버 다이빙보다 2배 이상 깊은 수심 72m까지 내려갈 예정이었고 그 깊이에서 호흡을 하기 위해 몇 종류의 가스를 혼합해서 채운 탱크를 각자 몇 개씩 몸에 지니고 있었다. 파도는 헤엄치는 우리를 마구 때려 댔고, 그래서 우리는 표식 부표(浮標)가 있는 곳까지 가 최대한 빨리 잠수했다. 그제서야 장비가 가볍게 느껴졌다. 우리는 최근 발견된 슈토이벤 호의 잔해를 조사하러 가는 길이었다. 슈토이벤 호는 타이타닉 호보다 3배나 더 많은, 아마도 4500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 중 침몰한 독일 선박이다. 스웨덴의 한 민간 탐사팀과 폴란드 해군이 수중음파탐지기로 이 유령선을 정밀 조사했다. 하지만 이 배는 1945년 2월 10일 소련군 잠수함의 어뢰 두 발에 격침된 이래 몇 안 되는 잠수부만이 이 배를 목격했을 뿐이었다. 수심 21m에 이르자 바닷속은 한밤중처럼 깜깜해졌다. 강력한 수중 전등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것이라곤 수면에 떠 있는 부표와 연결된 줄뿐이었다. 깊이 내려갈수록 분위기는 더 음침해졌다. 수심 50m의 어둠 속에서 마침내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한쪽 옆으로 누워 있어 처음에는 분간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더 가까이 접근하면서 나는 우아한 난간과 일렬로 나 있는 현창(舷窓)들이 위쪽에 놓여진 기품 있는 선체의 윤곽을 알아볼 수 있었다. 1923년에 건조된 슈토이벤 호는 1944년에 부상병을 실어 나르기 위한 배로 개조되었다. 대공포로 무장한 168m 길이의 이 배가 독일 해안으로부터 65km 떨어진 지점에서 적의 공격을 받았을 당시, 최소 1000명의 민간인 피난민을 포함해 5000명 이상이 이 배 안에 빼곡히 타고 있었다. 불과 659명만이 차디찬 바닷속에서 구조되었다. 산책 갑판을 헤엄쳐 지나는 동안, 60년 전의 끔찍한 장면들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명 보트를 타려고 좁은 통로에서 선미 갑판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상상했다. 박살난 대형 창문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어떠한 선박 설비도, 흩어져 있을 법도 한 짐 꾸러미도, 아무것도 없었다. 갑판으로 밀어닥친 물살의 위력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갈 만큼 거셌던 게 분명하다. 산책 갑판을 지나 더 헤엄쳐 가니 부상당한 독일군 병사로 가득했던 콘서트홀로 통하는 입구가 보였다. 그 안에는 분명 수천 구의 유골이 있을 것이다. 나는 2004년 5월 말, 폴란드 해군 장교들이 이 침몰선을 조사한 뒤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들은 원격조종 무인탐사잠수정(ROV)으로 해저를 면밀히 조사했는데 침몰선 주변 전역이 "유해와 두개골, 그리고 기타 잔재로 뒤덮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배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잘못 들어갔다가 미처 빠져나오기 전에 산소가 부족할 수도 있어 위험할 뿐 아니라 이 수중 묘지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후의 생존자 몇 명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벌어진 극적인 일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나치가 내 조국에 저지른 만행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 동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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