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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초월한 손자국

보르네오 동부 우림지대의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동굴 벽에는 1만 년 된 손자국 그림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들 손자국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애보리지니의 그림과 유사하다. 이 바위그림은 고대 인류의 이주를 밝혀 주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보르네오 동부 우림지대에 있는 어느 동굴 벽에 스텐실 기법으로 만든 손자국이 남아 있다. 신비로운 상징으로 꾸민 이들 손은 '생명의 나무'처럼 퍼져 있다. 프랑스인과 인도네시아인들로 구성된 팀은 탐사를 통해 30군데가 넘는 동굴에서 이런 그림을 수백 개나 발견했다. 1만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바위그림은 주술사 입문 의식이나 샤머니즘 의식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선사시대의 애보리지니 그림과 관련이 있다면 인류의 초창기 이주에 대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마랑 산맥의 비탈에는 동굴이 여기저기 뚫려 있다. 현지 주민은 아시아의 진미인 흰집칼새 둥지를 구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바위그림 동굴을 찾았다. 바위그림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동굴들을 장식하고 있으며, 높은 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다(위). 고대인들은 입문 의식에서 용기를 보여 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동굴까지 올라가 그림을 그렸을지 모른다. 다야크족 안내인이자 내 친구인 함이 밀림에서 몇 발자국 앞서 가다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조심해, 뤽, 뱀이야!" 그가 말했다. 비가 내려 안경에 김이 서렸지만 커다란 코브라는 분간할 수 있었다. 뱀에게 물리면 우린 끝장이었다. 혈청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장 가까운 병원에 가려면 이틀 동안 걸어간 다음 또다시 이틀 동안 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린 후드득거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코브라는 몸을 쭉 뻗으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일라스켄쳉 동굴로 가는 중이었다. 우리가 보르네오에서 찾아 낸 동굴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도달하기 힘든 곳이다. 1998년 이 동굴을 발견했을 때에는 신비로운 바위그림을 몇 시간밖에 살펴보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많은 질문을 뒤에 남겨 둔 채 다음 목적지로 떠난 것이다. 누가 이 그림을 그렸을까? 언제? 그리고 왜? 우리는 더 많은 단서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다시 가는 길이었다. 프랑스인과 인도네시아인으로 이뤄진 우리 팀은 모두 합해 35명이었다. 고고학자와 동굴탐험가, 안내인, 촬영팀, 카누를 젓는 사람, 짐꾼, 요리사 등이 탐사에 참여했다. 탐사 여행은 한 달 전 마카사르 해협의 해변에서 시작되었다. 이 해협은 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인 칼리만탄의 동부에 있다. 우리는 짐을 잔뜩 실은 카누 10척을 타고 초콜릿빛 붕갈룬 강을 출발해, 길도 마을도 없이 밀림과 뾰족한 석회암 봉우리만 펼쳐진 지역으로 향했다. 붕갈룬 강과 마랑 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간 다음, 산악지대로 들어가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서 비슷한 바위그림을 볼 수 있는 일련의 동굴을 조사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작은 카누에 앉아 17년 전 이곳을 처음으로 탐사했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잡지 편집자였던 나는 동굴탐험가 친구들과 함께 칼리만탄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1127km를 이동하는 여행길에 올랐다. 섬을 반쯤 횡단했을 때였다. 묵을 곳을 찾아 어느 바위 아래로 들어갔는데, 천장에 그림이 보였다. 먼 옛날 숯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프랑스에 돌아간 나는 칼리만탄에서 그런 바위그림이 보고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1992년 프랑스인 고고학자 장 미셸 샤진과 함께 칼리만탄을 다시 찾았다. 우리는 2년 뒤 칼리만탄 동부에서 선사시대 그림을 발견했다. 1995년에는 인도네시아인 고고학자 핀디 세티아완이 우리 팀에 합류했다. 우리는 몇 년 동안 그 일대에서 그림이 있는 동굴을 수십 군데 찾아 냈다. 어떤 독특한 그림은 신비에 싸인 채 잊혀진 부족의 존재를 암시하기도 했다. 우리는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마랑 산맥의 뾰족한 봉우리 사이로 구불구불 흐르는 강을 따라갔다. 여행 도중 우리는 샘물 옆에 캠프를 세우고 나무에 그물침대를 매달았다. 요리사는 저녁으로 15cm 길이의 전갈을 구워 먹었다. 그는 전갈이 정력에 좋다고 말했다. 그를 빼곤 모두 밥을 먹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직전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뭇잎들이 흔들리더니 열대 폭풍우가 몰아쳤다. 비가 그치자 다음에는 홍개미 떼가 몰려왔다. 녀석에게 물리면 말벌에게 쏘인 것처럼 고통스럽다. 영리한 부기족 안내인 주프리가 그물침대 아래쪽에 휘발유로 불을 붙여 놈들을 쫓아 버렸다.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카누를 타고 구아테웨트로 향했다. 이 동굴의 이름은 노련한 안내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테웨트는 40년 동안 아시아의 진미인 새집을 구하기 위해 동굴을 찾아다녔다. 몇 년 전 그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 동굴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는 카누를 강가에 세워 두고 짐을 부린 다음 152m 높이의 울퉁불퉁한 암벽을 힘겹게 기어올라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온몸이 후끈거렸지만 올라온 보람은 있었다. 그림은 1999년 처음 봤을 때처럼 정말 놀라웠다. 스텐실 기법으로 남긴 200여 개의 손, 그리고 동물과 사람 그림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손 가운데 절반가량은 점이나 선, V자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무늬를 세어 보니 50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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