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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펀들랜드

글 : 크리스 캐럴 사진 : 요아킴 라데포겟

캐나다 뉴펀들랜드 주의 한 어촌마을이 암울한 현실을 맞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바우처 집안은 대대로 뉴펀들랜드 섬 근해에 서식하는 대서양대구를 잡아서 생계를 꾸려왔다. 이들은 낚싯줄에 걸려드는 대구를 직접 손으로 건져 올린다. 바우처 가가 대구잡이를 시작하게 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그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레이 바우처(45)는 자신의 어선을 팔려고 내놓았다. 배가 팔리면 대대로 전수해 온 신기한 대구잡이 기술도 맥이 끊기게 된다. 수면의 변화를 읽고 바다 밑 어디에 파인 곳과 돌출한 곳이 있는지 파악하고 무엇보다 대구가 숨어 있는 곳을 육감으로 찾아내는 기술 말이다. 바우처는 아들을 자동차공학을 공부시키기 위해 뉴펀들랜드 주의 주도인 세인트존스로 보내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가 아직 대구잡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뉴펀들랜드의 영세어민들이 한때 이곳의 대표산업이었던 어업을 포기하면서 너나할 것 없이 어선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바우처의 어선을 제값에 사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2003년에 선체가 유리섬유로 된 길이 10.5m짜리 신품 디젤어선을 샀다. 십대 때 고기잡이를 시작하면서부터 가졌던 꿈을 이룬 것이다. “늘 새 배가 갖고 싶었죠. 물이 새지 않는 튼튼한 배 말예요.” 배를 산 지 몇 달 만에 캐나다 정부는 대구어업을 일시적으로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정부는 10년 전 남획을 이유로 대구 어장을 폐쇄한 후 10년 동안 두 차례 이같은 금어령을 내렸다. 이듬해에 금어령은 다시 풀렸다. 그러나 당국이 어획량을 크게 제한하고 이를 엄격히 시행하면서 바우처는 자신이 ‘고대하던 꿈(Awaited Dream)’이라고 이름 붙인 이 어선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2006년 대구잡이 조업기간 첫날 새벽 3시. 날씨는 춥고 안개가 자욱했다. 고기잡이에 좋은 날씨다. 바우처는 집을 나와 어촌 라포일의 길고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말 그대로 ‘벽촌’이라고 할 수 있다. 길도 나 있지 않고 차도 다닌 적이 없는 곳이다. 19세기 초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한 이래 마을을 출입하려면 배를 타야 했고, 주민들에게 어업은 거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이 어촌은 목가적이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죽어가고 있다. 고기잡이로는 더 이상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곳의 초등학교를 보면 마을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약 80명이던 이곳 초등학교의 입학생 수가 지난 입학식 때는 고작 8명이었다.
바우처가 불이 환한 부두에 도착한 것은 어선 몇 척이 이미 출어한 뒤였다. 그가 고용한 유일한 선원인 앨빈 본드(38)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드는 벌써 여러 해 어선을 타고 있지만 어업면허가 없다. 얼마 전 규정이 바뀌어 고기잡이를 그만둔 것이나 다름없는 아버지로부터 어업면허를 물려받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어부로부터 면허증을 사려면 몇 만 달러가 있어야 하는데 그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다. 요즘엔 은행도 어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선뜻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고 그는 씁쓸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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