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재탄생
글 : 게리 슈타인가트 사진 : 잉마르 비외른 놀팅
고대 실크로드의 옛 교역로를 따라 관광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작가 게리 슈타인가트가 우즈베키스탄의 옛 대상로를 여행하며 이 변화의 현장을 확인해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지난겨울 어느 날 아침, 나는 거대한 푸른 돔이 인상적인 초르수 바자르에 도착했다. 낯선 도시로 11시간의 비행을 마친 사람답게 머릿속이 몽롱하고 정신이 혼미했다. 우즈베키스탄의 활기찬 수도 타슈켄트는 이 나라를 짧게나마 둘러보는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음울한 겨울날을 보내며 꿈꿔왔던 바로 그 우즈베키스탄이었다. 나는 어릴 적 중앙아시아 관련 서적을 탐독하곤 했다. 사막 위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볕과 고향에서처럼 무작정 푹 삶기만 하지 않은 음식들은 이 나라에 애틋한 동경심을 품게 했다. 사진 속 도시마다 솟아 있는 청록색 미너렛(첨탑)들은 중앙아시아가 1500여 년간 세계의 활발한 교역로이자 전설적인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시대의 흔적이었다. 그 길을 따라 중국에서 지중해까지 작물과 향신료, 기술, 사상이 오갔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은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자국의 가장 강력한 자산인 실크로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크로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도 오랫동안 이국적인 모험과 문화 교류의 상징이었다. 이와 맞물려 우즈베키스탄에는 건설 열풍이 불고 있다. 실크로드의 상징 요소를 테마파크의 소재처럼 활용한 대규모 관광 단지들이 전역에 속속 조성되고 있다. 화려하게 재현한 타일 장식의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와 벽돌로 지은 대상들의 숙소 같은 시설을 중심으로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호텔과 식당, 수상 공원 등이 들어서는 형태다.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가 관광객이 가져다주는 외화를 필요로 하지만 우즈베키스탄만큼 자국의 실크로드 유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없다. 10년 전 겨우 200만 명에 불과하던 해외 관광객 수가 지난해 약 1200만 명으로 급증하면서 우즈베키스탄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관광 강국으로 부상했다. 개혁을 내세운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20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올해 초,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미국인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우즈베키스탄 비자는 소련 국가들 중에서도 발급 절차가 까다롭고 비용 부담이 큰 편이었다. 또한 정부는 대규모 호텔 건설 사업에 보조금을 쏟아붓는 한편 고속 철도망 확충에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오늘날 고속 열차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와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오아시스 도시 세 곳을 빠르게 연결한다. 첫 번째는 동방의 보석으로 불리는 사마르칸트다. 사마르칸트는 과거 이슬람 세계에서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오늘날에도 여러 모스크와 마드라사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두 번째는 우즈베키스탄 중부에 위치한 부하라다. 부하라는 한결 조용한 상업 도시로 미로처럼 얽힌 구시가지와 빠르게 성장하는 예술 문화가 돋보이는 곳이다. 세 번째는 서쪽의 건조한 사막 지대에 자리한 히바다. 과거에는 여러 ‘칸’이 이곳 사막 왕국을 다스렸으며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성곽 도시 이찬 칼라 덕분에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세 도시는 열차로 몇 시간이면 오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도시들 모두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인류 최초의 국제적·다문화적 이상이 담긴 고대 유적지들이 현대의 관광 산업과 상업화된 여가 문화를 상징하는 시설들과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역설적이게도 한 가지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많은 도시들이 급격한 현대화와 난개발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소련 시대는 세대를 거듭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마음속에 품어왔던 그 나라가 지금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오래된 오아시스 도시들을 잇는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