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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단스크의 변화를 기다리며

글 : 빅토리아 포프 사진 : 유스티나 미엘니키에비치

폴란드 사회가 40년 전 연대 운동을 탄생시킨 도시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살짝 공개합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단스크를 생각할 때마다 내가 경찰에 구금됐던 일이 떠올랐다. 때는 1982년 12월 16일, 폴란드의 공산 정권이 계엄령을 내린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폴란드 정부는 연대 노조 위원장 레흐 바웬사를 구금 11개월 만에 석방시켜 압박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정부 대변인은 그를 ‘전 노조의 전 위원장’이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바웬사는 그날 연설을 할 예정이어서 나를 비롯해 해외 특파원, 사진작가, 취재진을 돕는 폴란드인 등 약 40명이 인터뷰하기를 고대하며 그가 사는 아파트 건물 입구 옆에 모여 있었다.
 
조선소 전기공이었던 레흐 바웬사(76)는 1980년 연대 노조의 대표가 됐고 1983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90년에 폴란드의 대통령이 됐다. 지금도 그는 폴란드 정부를 향해 헌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계속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이 우리를 막아섰다. 당시 연대 노조는 금지된 단체였기 때문에 바웬사의 연설과 그를 만나려는 우리의 시도는 불법 행위로 간주됐다. 처음에는 경찰과 대치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계엄령이 시행되는 동안 많은 폴란드인들이 투옥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스운 장면이 연출되면서 긴장이 풀렸다. 나는 그때 임신 4개월차였는데 경찰이 내게 스트레스를 주려 한다는 사실에 특히 우리 일행 중 폴란드인들이 화가 나 항의했던 것이다. 지나가던 여성들이 호통을 치자 경찰관은 난처해하며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당시 정부에 우호적인 폴란드인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권력의 꼭두각시들에게 폴란드인다운 행동이 무엇인지 꾸짖으면서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찰서로 이송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웬사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만 받은 후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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