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는 아르메니아
3000년 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은 전쟁에서 지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재앙을 이겨왔다. 저항정신과 오랫동안 잊고 있지 않은 역사의 기억은 그들을 카프카스 지방에 그들만의 고향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계속 지탱해주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우리가 산 네 장의 지도에는 아마라스로 가는 길이 서로 완전히 다르게 나와 있었다. 지도를 여러 장 산 이유는 이 중 하나라도 조금이나마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해서였다. 카프카스 지방의 오지 전문 가이드인 게보르그 멜코니언은 30분 간격으로 차를 길 옆에 세웠고, 우리는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지도들을 살펴보았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도 네 장 다 실제 모습과는 달랐고 도로 표지판은 모두 유산탄과 탱크 포탄에 맞아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 있었다. 결국 우리는 감에 의존해 가는 도중 이따금씩 나타나는 진흙 웅덩이를 통과하며 시속 약 10km로 힘겹게 남쪽으로 향했다. 진흙 웅덩이들은 너무 깊고 미끌미끌해 게보르그의 러시아산 4륜구동차는 뒷바퀴가 반원을 그리며 제멋대로 움직였다. 마지칼라셴 마을에서는 농부 한 명이 쓸쓸히 새순이 돋는 4월의 포도원과 솜처럼 하얀 살구꽃이 만발한 과수원 한복판에서 노새용 쟁기를 허리와 어깨로 끌면서 기름진 흑토 더미들을 뒤엎고 있었다. 이 농부가 있는 곳에서 300m도 안 되는 지점에 국제적십자 표장이 없었더라면 먼 옛날의 풍경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지뢰밭 표시예요." 게보르그가 설명했다. 이 지역은 반란의 나라, 나고르노카라바흐다. 전란에 휘말린 13만 명의 주민들에게 이곳은 영원히 아르메니아 땅이다. 국제법에 따르면 분리를 추구하는 아제르바이잔의 한 지방이다. 1991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지만, 외교적으로는 어떤 외국 정부도 승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인 2만 5000명, 아르메니아인 5000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6년간의 분쟁은 1994년 휴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도 빈번히 총격이 일어날 정도로 상황은 불안정하다. 이곳은 또한 저항과 생존의 이야기로 이어진 아르메니아 3000년 역사의 전형을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마지칼라셴을 지나 2시간을 더 가자 우리는 산등성이에 이르렀고, 거기서 지그재그로 나 있는 산길을 따라 아마라스 계곡으로 내려왔다. 아르메니아의 수호 성인인 계시자 성 그레고리우스가 4세기에 지은 수도원이 옹이투성이 뽕나무들의 정적 속에 휩싸인 채 지극히 황량한 계곡 바닥 위에 서 있었다. 성벽이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 총탄 투성이의 돌벽에 뚫려 있는 구멍을 기어서 들어갔다. 아마라스에 있는 이 수도원에는 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지은 최초의 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의 교육적 전통과 아르메니아어 알파벳의 기원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