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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한 해

글 : 신시아 고니 사진 : 대니 윌콕스 프래지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SARS-CoV-2, 코로나19.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이 바이러스는 우리의 방어 능력을 비웃고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2020년 세계를 점령해버렸다. 본지는 이번 호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과학과 환경,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뒤에 나올 기사에서 기자 로빈 마란츠 헤니그가 ‘끔찍한 해’라고 칭한 올해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에서는 한 남성이 대나무 막대로 장벽을 만들어 그 위에 ‘봉쇄’라고 적은 비닐을 걸은 뒤 마을로 통하는 입구를 막았다. 벨기에의 한 장의사는 방호복을 입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는 12명만 참석할 수 있는 추모식에서 한 아이의 부모가 마스크를 쓴 채 자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이는 한 달 전 두통을 호소했다.

우리는 올 한 해를 보내며 이 모든 사람과 지역, 이 슬픔과 두려움이 단 하나의 현상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들 대부분은 전염병학자나 스페인 독감 생존자가 아니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들 대부분에게 ‘세계적 유행병’이라는 단어는 역사서나 디스토피아 소설, 헤니그 같은 과학 전문 기자들의 경고가 담긴 책에서나 볼 법한 것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실제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다룬 이번 특집호의 한 기사에서 헤니그가 적었듯 숙련된 전문가조차 코로나19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버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처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조차 과학자들이 서로 논쟁하고 의견을 달리하고 입장을 바꿔가며 재검토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불안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실험실 가운을 입은 영웅이 갑자기 나타나 이 질병을 단숨에 물리쳐주기를 바랐다.’

이번 호에 실린 글과 사진들을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는 것은 오만한 행동인 동시에 희망이 담긴 행동이다. 기록이라는 것은 훗날 회상에 잠겨 들춰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이 사태가 옛일이 될까?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이 위기를 극복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그리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또한 이 끔찍한 한 해를 보내는 동안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번 호에서 본지의 기자들과 사진작가들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헤니그의 글에는 코로나19가 향후 과학 연구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실험실 가운을 입은 영웅의 등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대중 앞에서 백신 개발 과정의 상당 부분이 전례 없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 헤니그는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백신 개발 작업에 의구심을 가진다.

그녀는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 연구가 대중에게 여과 없이 노출되는 것이 긍정적인 일로 판명될 수도 있다’고 적었다. 일부 사람들의 표현처럼 마치 과학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있는 상태에서 비행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한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전반적인 과학적 절차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높여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우리 인류는 놀랍도록 영웅적인 일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안을 발견할 가능성은 매달 그리고 매일 크게 변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격리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20초간 손 씻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동안에도 지구온난화는 계속 진행됐다. 코로나19 사태가 몰고온 부작용 중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낙관론이 퍼졌다. 그중 주목할 만한 현상들도 일부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운하에 돌고래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사실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다. 경기 침체로 환경오염이 줄어든 덕에 펀자브 지역 주민들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히말라야산맥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은 사실이다. 태국 방콕과 브라질 상파울루의 대기 질이 깨끗해졌다는 보도도 사실이다.

케냐 대통령 우후루 케냐타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으로 봉쇄령을 처음 선포하며 ‘움직임을 잠시 멈추는 것’이라는 묘하게 시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실제로 올해 한동안 전 세계가 한 지역씩 차례로 멈춘 듯 보인 적이 있었다. 거리가 텅텅 비고 사업장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집에서 안전하게 격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들조차도 세상이 완전히 멈췄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구급차는 바쁘게 환자들을 실어 날랐고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혼란에 빠졌다. 수많은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을 무릅쓰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환경에 미친 영향에 관한 기사에서 기자 로버트 쿤직이 적었듯 대기 오염이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서는 화재도 발생했다. 쿤직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구에서 80억 명에 가까운 인구가 아등바등 살아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경험이 우리가 지구를 대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꾸게 될까? 만약 세계 각국의 경제 체제들이 자연이 정해놓은 한계에 맞춰 운영된다면 어떤 모습처럼 보일까?”

절망적인 한 해를 보내면서 한층 고집스레 현실을 부정하게 된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특히 미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지난 4월 중순경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세계 최고치를 기록했고 8월 말 무렵에는 미국 다음으로 사망자가 많이 나온 브라질보다 50%나 더 많은 약 18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 호에서 기자 필립 모리스를 비롯한 여러 기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올해 우리는 새로운 영웅들도 만나게 됐다. 마스크를 쓴 채 기꺼이 주변 사람들을 이끌고 위로하며 돌봐주는 사람들 말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끊임없이 ‘만약’을 가정하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우리에게 2020년은 그 해답을 제공한다.

갑작스레 ‘필수 인력’이 된 이들에게 박수 대신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고 더 나은 보호 조치와 의료 혜택을 제공한다면?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들의 얼굴들을 좀 더 자세히 살핀다면?

앞서 언급한 디트로이트에서 살던 그 아이의 이름은 스카일러 허버트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경찰관이고 아버지는 소방관이다. 그 아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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