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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와 영적 세계의 사이에서

글 : 이글리카 미슈코바 사진 : 에보 단체프

불가리아의 토속 신앙은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번영과 건강을 불러오기 위해 인간을 영적 세계와 이어준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들리는 소리라고는 종소리뿐이었어요. 그 소리는 아주 거칠고 원시적이었죠.” 사진작가 에보 단체프가 기억을 떠올린다. 섬뜩한 가면을 쓴 왁자지껄한 무리가 하늘 높이 뛰어오르고 춤을 추며 팔을 마구 움직이고 종을 울려대면서 평범한 일상을 어지럽혔다. 이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 페르니크에서 있었던 일이다. 페르니크에서는 1월이면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편에 속하는 가면 축제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로바 축제가 열린다. 이 가면 행사는 불가리아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다. 이와 비슷한 겨울 축제가 유럽 곳곳에서 개최되는데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의상, 의식을 선보인다.

불가리아에서 가면을 쓰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 눈에 비치는 모습이나 이름에 따라 각양각색일 수 있지만 주로 ‘쿠케리’로 알려져 있다. 쿠케리는 구경꾼들을 당황케 하고 즐겁게 해주는데 이 전통은 토속 의식을 보존하는 쿠케리 자신들에 의해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 예로부터 이어져온 마을 규모의 가면 행사에서뿐 아니라 현대 축제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전통은 이런 상징적 변화와 쇄신을 통해 도시 거주자들의 참여도 이끌어내고 있다.
 
쿠케리로 변신한 차르간 마을 출신의 소년들이 쟁기질을 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불가리아 남동부에 자리 잡은 이 농촌 지역은 트라키아인과 연관이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쟁기질 및 파종 공연이 봄 의식의 정점을 이룬다. 탈을 쓰고 분장한 두 소년이 자신들의 몸에 쟁기를 매단 채 고랑을 만들고 있다. 이런 상징적인 행위는 사람과 동물, 농작물의 번식력을 높이기 위한 것과 연관이 있다.
한때 도시에서 살았던 사진작가 에보 단체프는 페르니크의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매료됐다. 쿠케리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강한 유대감을 표현하는 존재였는데 자연은 단체프가 주제로 삼던 대상이었다. 결국 단체프는 자연의 손짓에 이끌려 새로운 목적의식을 찾아 시골로 거주지를 옮기게 됐다. 이렇게 불가리아의 진정한 가면 행사 전통과 그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기 위한 한 사진작가의 여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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