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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환경

글 : 에스더 호바스 사진 : 에스더 호바스

북극 원정대에 참가한 한 사진작가가 극야 속에서 부빙을 따라 떠돌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쇄빙선 폴라슈테른호는 1년 가까이 해빙에 얼어붙은 채 북극 횡단 해류를 따라 떠다녔다. 이 쇄빙선에는 극지방의 혹독한 겨울과 맞서 싸우며 북극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와 선원 1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북극 기후 연구를 위한 다학제 부동 관측소(MOSAiC)’ 원정대의 첫 탐험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보다 4년 전에 나는 처음으로 북극에서 취재를 하면서 얼음과 추위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취약한 극지방의 환경을 촬영하는 일에 전념하겠노라 다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MOSAiC 원정대에 대한 소식을 접했고 그 무리에 무조건 합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9년 9월 20일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폴라슈테른호가 출항할 당시 나는 극지방 탐험에 아홉 차례 참여해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MOSAiC 원정은 이전에 참여했던 원정들과는 달랐다. 우선 원정 초반 내내 기나긴 극야가 이어졌다. 그다음으로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의도적으로 부빙 사이에 갇힌 이 쇄빙선은 얼음이 가장 두꺼워지는 겨울에 북극 인근 해역에서 표류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구조 인력이 도착하기까지 2~3주가 걸리고 그 후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기까지 2~3주가 더 걸릴 터였다. 우리는 화재부터 차디찬 물에 빠지는 사고, 심장마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둬야 했다.

훈련은 원정에 오르기 한참 전부터 시작됐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는 훈련용 풀장에서 인공 폭풍우가 몰아치는 동안 거센 물살 속으로 뛰어들어 파도를 가르며 구명 뗏목을 향해 헤엄쳤다. 이따금 치는 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바람 소리와 천둥 소리 때문에 서로 대화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북극곰에 대비한 안전 교육을 받을 때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사방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가운데 소총과 플레어건을 쏘는 연습을 했다. 너무 지쳐서 울어버린 날도 있었다.

나는 모든 교육에 한 번은 훈련생으로, 또 한 번은 사진작가로 두 번씩 참여했다. 가장 힘든 훈련은 소방 훈련이었다. 우리는 불을 진압하고 사람들을 구조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이 모든 과정은 온도가 120°C에 육박하는 화재 훈련실에서 30kg에 달하는 장비를 착용한 채 이뤄졌다. 훈련생들은 훈련 1회당 약 10분 정도 훈련실에 머물렀지만 나는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땀을 뚝뚝 흘리며 훈련실에서 수 시간을 머물렀다.

그럼에도 훈련은 즐거웠다. 극한의 환경에서 나 자신과 동료들을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내 한계를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해상 생존 훈련에 자원하기까지 했다. 이 훈련을 받는 동안 나를 포함한 14명의 훈련생은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다. 제한된 물자를 나누고 물을 구하며 3000마리에 달하는 이 지역의 북극곰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훈련이 끝날 무렵 나는 진이 다 빠져버렸지만 이상하게도 다가올 원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겨울에 진행된 MOSAiC 원정에 참여한 대원들은 얼음장 같은 북극해에 빠지는 것을 비롯해 비상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했다. 한 훈련생이 인공 폭풍우가 만들어낸 거친 파도와 휘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헤엄친 후 물 밖으로 끌려 나오고 있다.
10월 4일, 우리는 정박할 부빙에 도착했다. 그날은 수평선 위로 떠오른 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나날 중 하루였다. 곧이어 하루 종일 어둠 속에서 보내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달과 별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고 빛이라고는 폴라슈테른호의 조명과 원정대원들이 착용한 헤드램프의 불빛이 전부였다.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눈보라 때문에 사진기의 파인더를 보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손은 아플 정도로 시렸다.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도 얼어붙은 손이 말을 듣지 않아 사진기에 담지 못한 순간이 많았다. 결국 나는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사진기를 작동할 수 있도록 사진기 전체를 얇은 폼테이프로 감쌌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육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했다. 나와 바다 사이에는 60cm에서 90cm 정도 되는 불안정한 얼음만이 있었다. 선박의 조명에 비친 얼음은 회색이었고 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달에서 촬영한 유명한 사진이 떠올랐다. 달 표면 뒤로 우주가 펼쳐져 있는 풍경 말이다. 나는 얼음에서 우주를 볼 수 있었다. 이때가 원정을 하는 동안 가장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는 두려운 것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내게는 북극곰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얼음 위에서 북극곰을 경계하는 임무를 맡았던 날, 나는 과학자 두 명이 일하고 있던 텐트 밖에서 소총을 든 채 혼자 서 있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고 눈이 너무 많이 내렸으며 주위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집이 2.5m에 달하는 북극곰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과학 기지 주변에 인계철선이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북극곰이 인계철선을 통과해 지나가면 경보가 울릴 것이다.

이 사실을 떠올리고 있는데 공중에서 주황색 신호탄이 터졌다. 그러자 북극곰이 겁을 먹고 나를 향해 곧장 달려오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곰을 쫓아내기 위해 신호탄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얼어붙어 말을 듣지 않았다. 과학자 한 명이 나를 대신해 신호탄을 집어 들었다. 쇄빙선으로 돌아왔을 무렵 나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후 대원들이 바람 때문에 경보가 울렸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부터 소총이나 신호탄 대신 사진기만 들겠다고 다짐했다.

12월 13일, 수평선 너머로 배 한 척이 보였다. 쇄빙선 카피탄드라니친호가 다음 원정대를 내려주고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종종 두꺼운 얼음을 헤쳐가며 트롬쇠로 돌아가는 데는 16일이 걸렸다.

원정에서 돌아온 지 약 일주일 뒤 나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의 회담에 참석했다. 어느 아침에 도심의 거리를 걸으며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얼음이 깨져 바다로 빠질 일이 없으며 북극곰이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평선을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 순간 비로소 나는 내가 원정 기간 내내 얼마나 긴장한 상태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의 그 어둠이 너무도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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