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인스타그램 보기

매거진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분쟁 지역

글 : 로넌 도노반 사진 : 로넌 도노반

한 사진작가가 우간다의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충돌에서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용인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나는 우간다 서부의 한 마을에 있는 폐가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창문을 통해 지켜보는 동안 야생 침팬지 한 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왔고 뒤이어 또 한 마리가 들어왔다. 나는 녀석들이 반사 유리 너머에 있는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과거에 나는 현장 답사를 하면서 수많은 야생 침팬지를 지근거리에서 몰래 따라다니곤 했다. 2017년에 이 취재에 나서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침팬지 무리로부터 몸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세마타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황폐해진 땅과 숲, 식량 및 작물 부족으로 인해 어떻게 집 안에 사는 영장류와 집 밖에 사는 영장류 사이에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대학교 졸업 후 현장 생물학자로 8년간 일하며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점박이올빼미, 아프리카 연안에 사는 해양 포유류,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야생 침팬지를 연구했다.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햄은 키발레 국립공원에서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그의 목표는 야생 침팬지의 습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나는 2011년의 거의 대부분을 인간의 존재에 익숙해진 침팬지들을 따라다니며 보냈다. 녀석들은 자신들을 관찰하는 이들과 수십 년간 충돌 없는 만남을 이어왔기 때문에 인간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나 키발레 국립공원에서 진행된 랭햄의 연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인간과 침팬지의 행동은 환경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침팬지는 인간처럼 기존에 먹던 식량이 사라지면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적응해나간다. 녀석들은 또한 우리처럼 동종의 다른 집단으로부터 자신들의 구역을 사수하는 잡식성 동물이다. 침팬지들은 공격을 인지한다. 당신이 침팬지보다 덩치가 더 크거나 녀석들보다 수적으로 우위에 있지 않은 이상 쫓김을 당한 침팬지들이 당신을 쫓아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녀석들은 당신을 사냥할 것이다.


본 협회를 위해 기자 데이비드 콰멘과 취재에 나선 나는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임무를 맡았다.

캬마자카 마을은 키발레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캬마자카 주변에 사는 침팬지들은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게 익숙해져 있다. 이 침팬지들은 매일 마주치는 인간들을 경계한다. 녀석들은 자신들의 이웃인 인간과 경쟁 관계에 있다. 녀석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자연림이 농사를 위해 개간되는 바람에 이제 녀석들이 주로 인간이 경작한 작물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녀석들은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민가 쪽으로 습격에 나섰다가 조그만 숲으로 돌아온다.

내가 이 사진을 찍은 곳은 농부 오무헤레자와 그의 아내 은테게카, 그들의 네 자녀로 구성된 세마타 가족이 살던 집이다. 은테게카는 그 집에서 살면서 침팬지들의 공격 위협을 끊임없이 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녀석들이 어떻게 집 앞마당에 나타나 창문을 들여다보며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는지 설명했다.

2014년 7월 20일,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은테게카는 아이들을 옆에 두고 밭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등을 돌린 사이 커다란 침팬지 한 마리가 걸음마기에 있던 그녀의 아들 무주니를 순식간에 낚아채 달아나버렸다. 침팬지 추적에 나선 마을 사람들은 내장이 드러난 채 인근의 덤불숲 아래 숨겨져 있던 두 살배기 무주니를 발견했다. 아이는 지역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에 사망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침팬지들의 습격은 계속됐다. 결국 세마타 가족은 굴복하고 말았다. 2017년 8월 그들은 소중한 자산인 집을 버렸다. 나는 세마타 가족이 임시 거처로 옮기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새 집을 방문했다.

세마타 가족이 입은 피해는 콰멘과 내가 본 협회로부터 의뢰를 받은 취재 주제, 즉 인간과 침팬지 간의 최악의 갈등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내가 찍은 사진들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내 사진들이 인간이 겪은 비극을 위로하고 침팬지를 이동시키는 것과 같이 이 갈등을 끝내기 위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오무헤레자와 은테게카는 텅 빈 자신들의 옛집 열쇠를 내게 건네주며 그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허락해줬다. 나는 몇 달간 닫혀 있었던 문을 어깨로 힘껏 밀고 그 집에 들어갔다. 창유리 몇 개가 깨져 있었다. 은테게카에 따르면 이는 침팬지들의 소행이었다. 나는 먼지투성이의 어두운 방에 서서 무주니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그의 부모가 창가에서 침팬지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고통을 되새기지는 않았을까 궁금했다.

지방 정부 관료들과 세계적인 비정부 기구들은 이곳의 농부들에게 침팬지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어떤 느낌일지 그들은 알까? 나는 침팬지가 집에 나타날 때마다 세마타 가족이 느꼈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세마타 가족이 떠난 집 밖에 모여든 침팬지들이 유리창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도발 행위로 여기고 있다.
침팬지 한 마리가 마당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는 모습이 보였다. 뒤이어 몇 마리가 역시나 소리 없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분위기가 바뀌었다. 젊은 수컷 한 마리가 두 발로 서서 초목을 한 움큼 낚아채더니 마구 흔들며 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집에 당도한 녀석은 나뭇가지를 손에서 놓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발꿈치로 집 옆면을 연달아 빠르게 내리쳤다. 집 전체가 흔들렸다.

무리에서 몸집이 가장 큰 수컷이 두 발로 서서 팔을 흔들었다. 녀석은 이내 달리기 시작하더니 야구공 크기의 돌을 하나 집어 들어 힘껏 던졌다. 바닥에서 튀어오른 돌은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집을 강타했다. 나는 침팬지들이 그저 반사된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위협적인 행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공격은 실제 상황처럼 느껴졌다. 해 질 녘이 돼서야 마침내 그 침팬지들은 작은 숲으로 돌아갔고 나는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본 협회 동료들과 평화로운 공존을 외치는 관료들에게 촬영한 사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마타 가족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주려니 걱정이 됐다. 그들이 사진을 보고 슬픔과 고통에 휩싸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세마타 가족을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은테게카가 내게 침팬지들을 찍은 사진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내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위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녀는 한참을 웃더니 마침내 웃음을 멈추고는 “세상에, 이 녀석들 꼭 사람 같아요”라고 말했다. “새끼들을 빼고는 모두 내가 아는 녀석들이에요. 저 새끼 침팬지 좀 보세요. 피부색이 밝네요.” 그녀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세마타 가족은 그들의 새 토지와 집을 짓는 데 사용할 거대한 벽돌 더미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그들은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은테게카의 웃음을 통해 나는 세마타 가족이 여러모로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