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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의 길을 따라서

글 : 캐서린 토스 폭스 사진 : MAURITIUS IMAGES GMBH/ALAMY STOCK PHOTO 외 1곳

미국 하와이주에는 한때 왕족이 거닐었던 수백 년 된 오솔길들이 있다. 이 길들을 통해 하와이제도의 과거를 엿볼 수 있다.

미국 하와이제도 신화에는 히이아카 여신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히이아카는 빅아일랜드라고 불리는 하와이섬의 바람 부는 해안을 따라 흙먼지로 뒤덮인 오솔길을 걸어간다. 한 해변에 다다른 그녀는 그곳에서 화산의 신 펠레를 비롯한 자매들을 만난다.

푸나에 있는 그 외딴 해변에서 히이아카는 춤을 춘다. 이 춤을 훌라 댄스의 원형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쉽맨 비치라고도 불리는 하에나 비치로 이어지는 이 길은 여전히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군데군데 진창으로 미끄러운 4.6km 길이의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험준하고 바위가 많지만 고운 모래로 유명한 어느 한적한 해안에 이르게 된다.

먼 옛날에 이 길은 하와이제도 전역에서 해안 어촌을 이어주던 수많은 오솔길 ‘알라 헬레’ 중 하나였다. 그러나 1800년대 중반에 이 길은 말과 바퀴 달린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직선화되고 확장됐다.

사람들이 내륙으로 이주하면서 결국 해안가의 마을들은 버려졌고 이 길 역시 방치됐다. 오늘날 푸나 트레일을 따라 하에나의 백사장으로 모험을 감행하는 이들 중에는 이곳이 지닌 문화적 중요성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길은 아닙니다. 하지만 히이아카 여신이 이 길을 따라 걸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나알라헬레 트레일 앤드 액세스 프로그램에서 오솔길 유지 보수와 관련해 공공 자원을 관리하는 잭슨 바우어는 말한다.


하와이 왕국의 군주제가 전복되기 전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승인한 마지막 법안 중에는 1892년에 제정된 고속도로법이 있다. 이 법안에는 당시 하와이 내 길이나 도로는 사유지에 있더라도 모두 정부 소유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는 더 나아가 고대 하와이인들이 오가던 이 오솔길들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공도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속도로법이 등장한 때는 하와이 원주민의 토지권을 확립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1848년 당시 왕이던 카메하메하 3세는 ‘그레이트 마헬레’라는 토지 개혁안을 내놓아 약 160만ha의 토지를 재분배하면서 봉건 제도를 폐지했고 그 결과 개인의 토지 소유가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하와이가 미국의 영토이자 주로 편입되기 전에 이 법이 통과돼 사람들, 그 누구보다 하와이 원주민들이 계속해서 이 문화 유적지를 방문할 수 있었다.

여왕의 선견지명 덕분에 현재 문화유산 지역 및 자생림으로 연결되거나 구불구불한 시내 혹은 나무가 늘어선 능선을 따라 난 수백 킬로미터의 오솔길을 주 정부가 관리한다. 지금은 많은 길들이 도로와 고속도로로 변했다. 일례로 오아후섬의 번화가 알라모아나 대로는 원래 남쪽 해안선을 따라 나 있던 수백 년 된 오솔길이었다. 하지만 도보 여행 안내 책자에서 볼 수 없는 잊힌 오솔길도 존재한다. 이런 길은 대체로 산꼭대기나 능선을 따라 탁 트인 전망과 주차장을 갖춘 더 현대적인 길보다 인기가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이 같은 오솔길들이 지닌 매력이다.

이런 오솔길과 도로를 식별하는 작업은 나알라헬레 프로그램의 업무 중 하나다. 직원들은 오래된 오솔길을 보존하기 위해 손으로 그려진 1800년대 지도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옛길의 흔적을 찾는다.

알라카하카이 국립역사트레일은 하와이의 지역사회와 사원, 낚시터 등을 이어주는 280km 길이의 도로망으로 그중 일부 구간을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이 따로 관리한다. 이 도로망의 일부분은 과거 하와이 왕족인 ‘알리’들이 이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구간은 배로 섬을 빙 돌아 이동하기보다 걷는 편이 더 빠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전달자들이 사용했다.

“옛 오솔길 중 상당수는 1000년 이상 이용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정말 흥미로운 일이죠.” 바우어는 말한다. 바우어는 바람이 부는 지역과 호놀룰루를 잇는 섬의 주요 도로들을 언급한다. “이런 길에는 수많은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계속 유지해나가고 싶어요.” 바우어가 말한다.


나는 여섯 살 난 아들과 함께 오아후섬 카에나포인트 주립공원의 거친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옛 하와이인들의 발자취를 좇았다. 카에나포인트까지 이어지는 5.6km 길이의 오솔길을 걷다보면 하와이제도 주요 섬들에서 마지막까지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해안 사구 생태계 중 하나를 지나게 된다.

레이산알바트로스와 쐐기꼬리슴새 등 약 2000마리의 바닷새가 카에나포인트를 번식지로 이용한다. 이 지역은 또한 큰군함조와 붉은꼬리열대새 같은 토종 야생동물과 위급종인 하와이몽크물범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우리 앞으로 펼쳐진 길 주변에는 작은 흰색 꽃이 피는 스카에볼라속 관목과 레이(하와이식 화환)에 흔히 사용되는 노란색 꽃이 피는 지피 식물 ‘일리마’, 단향 같은 토착 해변 식물이 늘어서 있다. 계속 걷다보면 태평양날가지숭어 ‘모이’가 출몰하는 바위투성이 해안 틈새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가족을 지나칠지도 모른다. 은은한 단맛과 단단한 식감으로 유명한 모이는 하와이제도 전역에서 과거 왕족이 즐겨 먹던 생선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파피오’라는 물고기와 모이를 낚곤 했던 해안가 장소들을 가리켜 보였다. 두 분은 최소 3세대 ‘카마아이나(하와이 태생이라는 뜻)’다. 낚시에 관한 규제는 1819년에 해제됐다.

레이나아카우하네로 알려진 이곳은 최근에 사망한 이들의 영혼이 조상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뛰어내리는 장소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커다랗고 경사진 바위가 바로 그 지점이다.

“그 장소가 지금도 있어요.” ‘쿠무 훌라(훌라 댄스의 대가)’인 라아케아 페리는 말한다. 페리는 코올리나에 있는 포시즌스 리조트 오아후의 숙박객들을 카에나포인트로 가는 오솔길로 안내하는 일을 한다. “그 길을 걷다보면 마치 누군가의 무덤으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영혼이 종착지로 가기 위해 이용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걸으니까요.”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생전에도, 죽어서도 이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작물을 재배하고 바다로 나갔죠. 이곳에서 모든 일을 했어요. 길이 하나 있다면 그 주변으로는 보존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오솔길은 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죠.” 바우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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