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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아래로 잠수하다

글 : 니콜 소베키 사진 : 니콜 소베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더 유명하기는 하지만 수단에 있는 피라미드에는 고고학자들이 탐사할 수 있는 왕실 무덤이 숨겨져 있다. 잠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암반으로 둘러싸인 통로를 따라 한 발자국씩 내려갈 때마다 내가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바로 황갈색 물웅덩이와 물속에 감춰진 지하 수로 그리고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곳 수단 북부 사막에 있는 고대 공동묘지 누리에는 쿠시 왕족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이들은 수천 년 전에 거대한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지하 묘실들에 묻혔다. 현재 이 묘실들은 근처에 있는 나일강에서 스며들어온 지하수에 잠겨 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로부터 자금을 일부 지원받은 고고학자 피어스 폴 크리스만은 사상 최초로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수중 유적지를 조사하는 탐사대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2020년에 이 탐사대를 따라 원대하면서도 위험한 그들의 도전을 사진에 담을 생각에 처음에는 담담한 한편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하로 더 깊이 걸어 내려갈수록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고고학자 피어스 폴 크리스만이 수단의 누리 공동묘지에 있는 수중 무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이 실존적 불안을 예전에 이미 겪어봤다. 나는 9년 전에 기관총이 지상에 총알을 퍼붓는 동안 리비아의 배수관에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7년 전에는 알샤바브 무장 단체의 공격이 한창이던 나이로비의 한 상점가에 있었고 4년 전에는 소말리아의 무법 지대인 한 해변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외부의 적은 없었지만 마음속에 있는 뭔가가 내게 물속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크리스만과 잠수 지도자 저스틴 슈나이더가 걱정이 역력한 내 표정을 읽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말했다. 나는 카메라를 손에 꽉 쥐고 호흡기를 입에 물고는 다리를 꼰 채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면으로 올라온 나는 준비가 다 됐다는 의미로 동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좁고 비탈진 수로를 통과해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는 장례 전통이 존재한다. 2300년 된 이 무덤은 약 20년간 쿠시 왕조를 이끌었던 나스타센왕의 안식처였다. 그에 앞서 검은 파라오로 알려져 있 던 쿠시 왕조의 몇몇 왕들은 누비아와 이집트 전역을 다스릴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 나스타센왕은 경쟁 국들의 위협을 받아 수도를 남쪽으로 이전하기 전에 누리에 묻힌 마지막 왕이었다. 쿠시 왕조는 훌륭한 신전과 피라미드 그리고 그 내부에 매장된 파라오들을 남겼다.
 
물에 잠긴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부장품 중에는 내세에서 왕의 시중을 담당할 장례용 입상인 샤브티가 포함돼 있다.
물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누리를 발굴하는 것은 특히나 만만찮은 일이었다. 100년 전에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이집트학자 조지 라이스너는 BC 7세기에 이집트 전역을 통치한 타하르카왕의 묘실을 탐사할 목적으로 누리를 방문했다. 이 왕은 예루살렘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소집한 것으로 구약성경에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누리에 있는 다른 많은 고분들에 대한 탐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기후변화와 누리 일대에서 갈수록 늘어가는 농업에 대한 수요, 나일강을 변화시키고 있는 현대식 댐의 영향으로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크리스만이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수단은 쿠데타와 코로나19 사태, 기록적인 홍수, 2019년 혁명을 겪었다. 시위대가 수단의 이슬람 이전 역사를 말살하려 했던 오마르 알 바시르의 30년 독재 정권을 무너트렸을 때 그들은 누비아 왕족들의 이름을 외쳤다. “내 할아버지는 타하르카다, 내 할머니는 칸다카다!” 바시르는 현재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된 상태다.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자들은 권력을 잡고 민주 국가로의 체제 전환을 방해한 군부 세력을 비난한다. 오랫동안 잠겨 있던 역사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어두운 수로를 통해 묘실로 헤엄쳐 들어갔다. 부옇게 뜬 침전물이 시야를 전부 가렸다. 공간은 협소했지만 길을 잃고 원을 그리며 헤엄치기 십상이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두 번째 묘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무너진 천장 덕분에 반갑게도 에어포켓이 형성돼 있었다. 우리는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작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흙을 파는 전통적인 방식의 발굴 기술은 쓸모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만이 이끄는 탐사대는 그간 등한시됐던 왕국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야 했다. 수중 고고학은 현재 전문 분야로 자리를 잡았지만 초기에는 난파선 구조자들의 기술과 도구를 적당히 개선해 사용했으며 이렇게 비좁고 한정적인 공간에서 이를 사용한 전례도 거의 없었다.

부피가 큰 스쿠버 탱크가 들어갈 공간은 당연히 없었다. 대신 우리는 지상의 공기와 우리를 연결해주는 노란색 호스를 통해 호흡해야 했다. 호스는 입구부터 연결이 돼 있었다. 묘실이 붕괴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입구는 15m짜리 철골보로 보강됐다. 탐사대원들은 금박이나 작은 입상, 도자기를 비롯해 무엇이든 흥미로운 물건들을 찾아 방수판에 마커로 발견물들을 기록했다. 가느다란 밧줄이 우리를 세 번째이자 마지막 묘실에서 지상 세계로 이어줬다.

작업이 계속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크리스만이 마지막 묘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나스타센왕의 석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몇 분 뒤 크리스만이 뭔가로 가득 찬 양동이 하나를 갖고 돌아왔다. 그 양동이를 밖에 있는 팀원들에게 보내면 그들이 내용물을 조사 하고 분류했다.

이 작업을 반복한 지 한 시간쯤 지나 크리 스만은 두 번째 묘실에서 물 밖으로 올라와 숨을 고른 뒤 “샤브티!"라고 외쳤다. 크리스만은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작은 장례용 입상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그의 손바닥 위에 놓인 입상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가쁜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깎아 만든 그 입상은 남성을 묘사한 것으로 중간 부분이 부서졌지만 위엄 있고 인자한 표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듯 보였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은 이 입상들이 사후 세계에서 주인을 섬기기 위해 부활한다고 믿었다. 지금 나는 이들과 함께 지하 세계에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경외감이 밀려왔다.

나는 물기가 돌아 반짝이는 샤브티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 셔터 소리와 함께 금방 사라지고 말 피사체가 사진에 담겼다.

나스타센왕은 이곳에서 작은 입상으로 만들어진 수백 명의 묘지기와 함께 2000년간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나는 곧 지상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우선 나는 이 장소를 기록으로 남긴 채 사진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기억하며 한 컷 한 컷 사 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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