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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토끼의 힘겨운 겨울나기

글 : 칼 플린 사진 : 앤디 파킨슨

눈토끼는 추운 날씨에 번성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녀석들의 생태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영국 스코틀랜드 고지는 수백만 년에 걸쳐 얼음과 암석의 작용으로 형성된 매끈한 빙하 지형이다. 산들은 둥글게 솟아 있고 권곡으로 알려진 그릇 모양의 우묵한 함몰지들이 곡선으로 이어지는 능선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땅은 두 가지 풍광을 지니고 있다.

늦여름이면 이 지역은 푸른 자줏빛의 작은 꽃들이 줄줄이 달린 헤더뿐 아니라 버드나무와 늪도금양의 잎, 말랑말랑한 구슬 같은 블레이베리 열매, 빨갛게 빛나는 월귤로 뒤덮인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만에 이 동일한 고지가 눈으로 뒤덮일 수도 있다. 시속 100km의 강풍이 바람에 깎인 얼음 사이로 매섭게 휘몰아치며 말이다.

이곳은 눈토끼의 서식지다. 이 작은 포유류는 유라시아 전역의 툰드라와 고산 지역, 아한대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영국에 서식하는 눈토끼의 약 99%가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되는데 그중에서도 북동부의 거친 그램피언산맥이 녀석들의 주요 서식지다.

지난겨울에 나는 그램피언산맥의 일부인 케언곰산맥을 올랐다. 두껍게 쌓인 눈을 헤치고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데 뇌조 한 마리가 잠을 깨운 것에 불만을 터트리듯 푸드덕 날아올랐다.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내 발소리를 감지한 하얀 눈토끼들이 아래쪽에 있는 권곡으로 쏜살같이 내려가더니 몸을 돌려 가볍게 능선 위로 날아올라 그 너머로 달아났다.

그 눈토끼들은 산허리의 무성한 초목 사이에 만들어진 보금자리나 얕게 팬 땅으로 피신할 것이다. 그곳에서 녀석들은 털로 뒤덮인 몸을 잔뜩 웅크리고 끄트머리가 검은색인 두 귀를 목에 바짝 붙인 채 눈보라가 잦아들기를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녀석들은 수일간 내리 휴식을 취하면서 기지개를 켜거나 잠시 억센 헤더를 뜯어먹고 돌아오기 위해 한 시간에 한 번 정도씩만 은신처를 빠져나올지도 모른다.

이런 행동은 토끼류로는 영국에서 유일한 토착종인 이 동물이 이처럼 혹독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습득한 적응 방식 중 하나다. 아마 가장 인상적인 점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녀석의 모습일 것이다. 여름이면 매끈하고 회갈색을 띠는 털이 더 두껍고 단열이 잘되는 흰색 또는 회색으로 변모한다. 해마다 일조량의 감소와 기온 하락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눈토끼의 겨울철 털갈이 과정을 촉진한다. 연한 색 털이 발에서 허벅지를 따라 어깨를 거쳐 새로 빽빽이 자라면서 온몸이 얼룩덜룩해진다.

이 동물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변화무쌍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눈토끼들이 갈수록 보금자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성체 눈토끼 세 마리가 고지대의 빙원에서 눈보라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눈토끼들은 어디서든 가능한 한 자연적으로 생기는 은신처를 찾는다. 사진 속 상황에서는 산등성이가 바람으로부터 녀석들을 보호해주고 있다. 눈토끼들은 땅이나 초목에 팬 우묵한 곳에서 쉬기도 한다.
위장술의 역효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팔래치안주립대학교 생물학과의 마케타 지모바 조교수에 따르면 눈토끼는 털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단 21종의 조류 및 포유류 무리에 속한다. 이 동물들은 거의 대부분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 산다. 스코틀랜드에서 이런 식으로 털색을 바꾸는 종은 호리호리한 몸에 노련한 사냥꾼으로 알려진 북방족제비와 뇌조뿐이다.

눈토끼의 풍성한 겨울 털은 위장에도 도움이 돼 붉은여우나 북방족제비, 하늘 높이 나는 검독수리 같은 포식 동물로부터 녀석들을 더욱 안전하게 지켜준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가 극심한 환경에서는 풍성한 겨울 털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산지에서는 하루 단위로 기온이 급격히 오르고 내리는 것이 흔한 일이다. 가장 따뜻한 날에는 이탄지가 검고 질퍽하며 얼음이 껴 얼룩덜룩해 눈토끼가 어두운 헤더를 배경으로 환하게 빛나며 이목을 끈다.

이는 항상 위험한 일로 간주됐지만 최근 지모바의 주도로 진행된 연구를 통해 스코틀랜드의 눈토끼들이 현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후변화로 적설 일수가 크게 감소한 탓이었다. 2010년대에 들어 가을에 내린 첫눈이 지면을 덮은 날은 1960년대보다 평균 나흘 늦춰졌다. 이 지역의 평균 기온은 10년마다 0.1℃ 이상 올라 땅에 눈이 쌓이지 않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전반적으로 눈토끼가 지역 경관과 어우러지지 않는 날이 1년에 35일 더 늘었다.

이런 부조화로 인한 결과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스코틀랜드 수렵동물 및 야생동물 보존신탁(GWCT)에서 눈토끼를 연구하는 집단생물학자 스콧 뉴이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눈토끼는 추적 관찰하기가 “매우 어려운” 종이다. 예컨대 눈토끼 개체군은 주기적 변동을 겪는다. 이에 따라 어떤 해에는 과학자가 1km² 범위 안에서 눈토끼를 고작 몇 마리만 보다가 수년 뒤에는 같은 지역에서 100마리 넘게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 주기는 먹잇감의 존재 여부와 특정 기생충의 유행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변동 폭이 매우 심하다보니 기후변화 같은 요소들의 영향력을 파악하기가 극도로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의 눈덧신토끼 개체군을 분석한 자료를 통해 가능성 있는 장기적 추세를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다. 지모바에 따르면 어떤 특정한 주에 눈덧신토끼가 포식 동물에게 사냥을 당해 죽을 확률은 눈이 없는 환경에서 녀석의 몸이 하얀 겨울털로 뒤덮여 있을 때 7~14% 증가한다. “이는 그다지 높은 수치로 보이지 않지만 실로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점점 더워지고 있는 이 행성의 야생동물들이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이 그렇듯 이 문제 또한 적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거나로 귀결되는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의 눈토끼의 경우 녀석들이 적응해가고 있다는 증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짝짓기 행동
구애 중인 한 쌍의 눈토끼가 코를 맞대며 애정을 표현하는 보기 드문 순간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일련의 사진을 통해 포착됐다. 암컷들은 대체로 수컷보다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 몸집이 큰 암컷은 1년 동안 한 번에 여러 마리씩 더 많은 수의 새끼를 낳는 편이다.
표적이 되다

이상한 일이지만 적어도 최근까지 눈토끼가 여우나 맹금, 북방족제비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증가했다는 사실이 인간이 미친 악영향보다 훨씬 덜 걱정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토지 소유주들은 수십 년간 산지의 상당 부분을 취미 목적의 야생 붉은뇌조 사냥을 위해 관리했다. 

눈토끼는 오랫동안 순전히 오락용으로 사냥됐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부 사유지 관리자들이 녀석들을 대량으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명목은 진드기를 매개로 하는 질병이 뇌조에게 퍼지지 않도록 방지한다는 것이었는데 과학자들은 이에 반론을 제기했다. 2016~2017년 사냥철 동안 총 3만 3500마리가 넘는 눈토끼가 사살됐다. 늘 논란이 많던 눈토끼 도태 작업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 2018년, 무소속 생태학자이자 산악인인 애덤 왓슨이 내놓은 분석 때문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는 언덕이 많은 북동부의 뇌조 사냥터에서 눈토끼 개체수가 1950년대 중반 수준의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스코틀랜드의 눈토끼 개체수는 약 13만 5000마리로 추산되지만 과학자들은 이 같은 추정치에 불확실성이 내재돼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수치는 8만 1000~52만 6000마리쯤일지도 모른다.

2021년 3월, 스코틀랜드 의회는 눈토끼의 감소를 우려해 허가받지 않은 눈토끼 사냥을 금지했다. 수수께끼 같은 이 동물의 개체수를 추적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일에 20년째 매진하고 있는 뉴이는 이 규제의 영향력을 파악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한다.

등산객이 헤더 속에 몸을 숨긴 눈토끼를 바로 옆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몇 년 전 여름, 나는 등산을 하던 중 덤불에서 유연한 눈토끼 한 마리가 튀어 오르면서 황갈색 풍경을 배경으로 실루엣이 펼쳐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녀석은 잠시 멈추더니 덤불 속으로 들어가며 자취를 감췄다. 한순간 눈앞에 나타났다가 금세 다시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치 녀석이 그곳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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